한
국 교회의 대표적인 건강한 교회
,
서울 사랑의 교회
옥한흠 목사님이 지난
2
일
,
향년
72
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
.
옥한흠 목사님의 소천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제 마음 한구석에 서늘한 바람이 부는 것만 같이 허전하고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했습니다
.
제가 옥한흠 목사님을 실제 만나 뵌 것은 세번 밖에 되지 않지만 옥 목사님은 제 신앙과 목회의 멘토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
.
옥 목사님과의 인연은 제가 조지아 대학 유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
.
말씀에 갈급해 있고 바른 신앙의 원리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저에게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테이프를 듣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
.
매주 그분의 설교테이프를 들으며 가정 예배를 드렸고 때로는 검과 같이 영혼을 찌르는 말씀에 가슴이 메여 더 이상 듣지 못하고 테이프를 꺼놓고 한참을 눈물을 삼킨 적도 있었습니다
.
당시 접했던
‘
평신도를 깨운다
’
는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도 새롭습니다
.
그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목사님의 설교에 의존한 신앙생활을 했으며 성경공부라는 것은 있어야 성경 본문의 빈칸을 채워 넣는 정도였습니다
.
당시 한국 교회는 말씀에 무지했고 말씀을 삶에 적용시키는 훈련도 턱없이 부족했습니다
.
하나님 안에서 성도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지 못했던 시절에
‘
성도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
’
이라는 옥 목사님의 말씀은 잠들어 있던 제 심령에 큰 충격을 주었었습니다
.
몇 년 동안 옥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신앙의 기초를 쌓고 성장을 시작한 저는 소그룹 성경공부 그룹을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말씀으로 섬기는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
.
그리고 그 열정이 결국은 목회자의 소명을 받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
.
한 번은
,
평신도를 깨운다는 책을 금서로 명하고 소그룹 성경공부를 위험한 집단
?
으로 주시하던 담임 목사님과 충돌을 빚어 한국에 계신 옥 목사님을 찾아가 신앙상담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
.
제가 성경말씀이 정확무오한
하나님 말씀으로 인정하고 고백하는
PCA
교단의 커버넌트 신학교로 오게 된 것도 결국은 옥목사님에게서 배운 신앙의 영향력 때문이었습니다
.
이처럼 그분은 알게 모르게 제 삶에 깊은 영향력을 주셨습니다
.
옥 목사님을 추모하는 방송을 보면서
,
성도들에게 뿐 아니라 목회자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올곧은 삶을 사신 목사님이 고맙고 감사했습니다
.
‘
그리스도의 제자 훈련
’
이라는 평생 한 뜻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그리고 깨끗하고 바르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셨던 목사님의 삶이 롤 모델이 부재한 한국 교계에 큰 위로를 던져 주었다고 믿습니다
.
한국기독교
100
주년 기념 예배 때에 온 한국교계가 모인 자리에서
‘
말만 무성하고 혀로만 믿음을 사는 한국그리스도인을 길러낸 죄인이 바로 자신
’
이라고 애통해하시는 모습
.
언제가 목회의 가장 행복한 때였는가
?
하는 질문에 처음 교회를 개척하면서
7,8
명과 둘러 앉아 뜨겁게 말씀 공부를 하던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노라고 고백하시는 목사님
.
오직 그리스도께 붙잡힌 그것을 쫓으며 평생 신실하게 믿음의 경주를 하신 존경하고 사랑하는 옥한흠 목사님
!
그렇게 깨끗하게 사셨으면서 자신의 이름을
“
한
”
없이
“
흠
”
이 많은 사람이라고 항상 생각하시며 사셨던 하나님 앞에 겸손한 하나님의 종 옥한흠 목사님
!
겉으로 보기에는 냉철하고 빈틈이 없어보이지만 마음은 한없이 따뜻했던 목사님
,
훗날 머지않은 때에 천국에서 뵙기를 소망합니다
!